넷플릭스 [맨 끝줄 소년] 드라마 리뷰 : 왜곡된 욕망이 만든 인간의 붕괴

비타한방(Vita Hanbang) | 시네마 마음처방 드라마리뷰

[맨 끝줄 소년] – 열등감을 품고 있는 욕망은 어떻게 한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는가

드라마 처음 1편을 보기 시작할 때는 그저 평범한 미스터리 스릴러인 줄 알았습니다. 맨 끝줄에 앉은 한 대학생의 위험한 작문, 그리고 그 글에 매료된 교수의 기묘한 사제 관계.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 드라마는 사건보다 인간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봅니다. 질투와 열등감, 인정받고 싶은 욕망,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이 서로 얽히면서 한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 지를 차갑게 보여 줍니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반전이 아니라 허문오라는 인물의 마음이었습니다.


살리에르의 열등감에 사로잡힌 작가 허문오

허문오는 늘 예민하고 신경질적입니다.

젊은 시절 한 권의 소설로 주목받았지만 이후에는 더 이상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 못했습니다.

반면 대학 동기이자 평생의 라이벌은 성공한 작가가 되었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와 가정을 이루며 누구보다 안정된 삶을 살아갑니다.

허문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아내가 곁에 있지만 마음을 열지 못하고, 과거와 타인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의 결핍만 되새깁니다.

한방심리학에서는 마음이 한 감정에 오래 머물면 기(氣)의 흐름도 함께 막힌다고 봅니다.

질투와 열등감은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게 만들고, 결국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까지 잃게 합니다.

허문오가 끝내 보지 못했던 것은 타인의 성공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글은 작가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허문오의 작가로서의 필력은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맨 끝줄 소년이 바라본 세상

그런 허문오 앞에 이강이 나타납니다.

맨 끝줄에 앉아 조용히 사람들을 바라보던 학생.

그의 글은 허문오가 평생 갈망했던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강이 허문오에게 다가간 이유는 그의 깊은 마음에 어떠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단순히 글 쓰는 법을 배우기 위함이 아니었으니, 아마도 그의 세계를 무너뜨리려는 계획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요?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진심으로 믿었던 사람에게 느낀 배신감은 오랜 시간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자신의 진심어린 고백을 앞에서는 이해하는 척 했지만, 뒤에서는 하찮은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 허문오를 향한 증오심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그 상처는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되돌아옵니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허문오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현실보다 무서운 것은 마음이 만든 이야기

허문오는 이강의 작문을 보면서 점점 글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라이벌의 가족 이야기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사실처럼 믿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판단으로 모든 것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이강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시작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허문오를 파멸시킨 것이 이강의 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 글을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던 허문오 자신의 마음이었습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사실을 드라마는 끝까지 보여 줍니다.


한방심리학으로 바라본 허문오

한방에서는 지나친 생각과 집착을 ‘사(思)’가 과해진 상태로 설명합니다.

생각은 원래 삶을 이해하기 위한 작용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마음은 한곳에 갇히고 기운은 흐르지 못합니다. 좋은 방향의 몰입은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지만 어두운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몰입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허문오는 과거를 놓지 못했고, 질투를 내려놓지 못했으며,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끊임없이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자신과 함께 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의 진심과 아픔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고, 의심으로만 채워버립니다.

결국 그의 파멸은 누군가에게 속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LOTUS의 시네마 마음처방

예전의 작가들은 원고지 위에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수십 번 찢긴 원고지 끝에서야 비로소 하나의 문장이 완성되곤 했습니다.
그 과정은 고통 이었지만, 동시에 창작을 완성시키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컴퓨터로 글을 씁니다.
형식은 편해졌지만, 창작의 본질적인 고통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의 문장 또한 쉽게 나온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시간과 감정의 축적 위에서 완성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끝내 세상에 닿지 못한 작품들이 더 많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그럴 때 작가들은 어떤 감정을 마주하게 될까요.
그리고 그 감정이 오래 머무를 때, 삶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특히 자신보다 앞서 나간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그 비교는 더 깊은 균열을 만듭니다.
허문오에게 김수훈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감정이 오래 머물수록 그것은 더 이상 감정이 아니라 상태가 됩니다.
그리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점 왜곡됩니다.

허문오는 끝까지 타인을 바라보느라 자신의 삶을 놓쳐버렸습니다.
반대로 맨 끝줄에 앉아 있던 이강은 늘 전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사람은 결국 자신의 마음이 만든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맨 끝줄 소년>은 결국,
오늘 내 마음이 무엇에 머물러 있는지를 조용히 묻는 작품이었습니다.

드라마는 타인의 삶을 보여주는 예술이지만,
결국 우리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허문오를 무너뜨린 것은 이강의 글이 아니라,
오래도록 풀지 못한 자신의 내부였습니다.

한방에서는 막힌 기운이 몸보다 먼저 마음을 흔든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은 타인을 이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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