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한방(Vita Hanbang) | 한방심리학 칼럼

나이가 들면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됩니다.
“이제 머리가 굳었나 봐.”
“예전처럼 외워지지가 않아.”
정말 우리의 뇌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굳어지는 걸까요?
다행히도 현대 뇌과학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반복해서 연습할 때 신경세포들이 새로운 연결을 만들고, 자주 사용하는 회로는 더욱 튼튼해집니다.
이런 능력을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뇌는 평생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관이라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생각과 비슷한 관점을 약 2천 년 전 한의학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황제내경》의 뇌수 개념
《황제내경》에는 “뇌는 골수의 바다다(腦爲髓之海)”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물론 당시 사람들이 현대의 신경세포나 신경가소성의 이론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뇌를 타고난 그대로 굳어 있는 기관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어떻게 돌보고 기르느냐에 따라 충실해질 수도, 쇠약해질 수도 있는 곳으로 바라봤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한의학에서는 신(腎)이 저장하는 정(精)이 골수를 만들고, 그 골수가 뇌를 채운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잘 돌보면 정신이 맑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지지만, 지나친 피로나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머리가 맑지 않고 기억력도 떨어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현대 뇌과학과 한의학은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뇌는 매일의 생활 습관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뇌, 특히 계획하고 판단하며 공부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전두엽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어떤 습관이 도움이 되는지 알아볼까요.
🔹 한방심리학은 뇌와 마음을 어떻게 바라볼까?
현대 뇌과학은 전두엽, 해마, 편도체처럼 각각의 뇌 영역이 기억과 감정, 판단을 담당한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한의학은 정신 활동을 특정 부위 하나의 기능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으로 이해했습니다.
예를 들어,
• 심(心) → 정신과 감정을 주관
• 신(腎) →생명의 근원이 되는 정(精)을 저장하여 뇌와 골수를 충실하게 함
• 비(脾) → 생각과 집중력을 주관
• 간(肝) → 감정의 흐름과 스트레스 조절을 담당
즉,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집중력이 흐려질 때 단순히 ‘뇌의 문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균형과 정신 상태를 함께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불안이 집중력과 기억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의학 역시 오래전부터 지나친 생각(思, 사), 걱정, 감정의 불균형은 몸의 기운을 소모하고 정신 활동에도 영향을 준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한방심리학은 ‘마음이 몸에 영향을 미치고, 몸의 상태가 다시 마음과 인지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순환의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합니다.
그래서 뇌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단순히 기억력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균형을 함께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뇌를 키우는 세 가지 습관
1️⃣ 머릿속에 담아 두지 말고 메모 하세요.
“이따가 이것도 해야지.”
이 생각 하나를 계속 붙잡고 있는 것도 사실은 뇌의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우리의 뇌는 동시에 많은 일을 기억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해야 할 일을 계속 머릿속에 담아두면 정작 중요한 공부나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캘린더나 메모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세요.
해야 할 일을 미리 적어두면 뇌는 그 일을 계속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의학에서도 불필요하게 정신을 소모하지 않는 것을 중요한 양생법으로 보았습니다.
쓸데없는 걱정이나 기억을 줄이는 것 역시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2️⃣시간을 정해 행동하는 습관을 만들어 보세요
“오늘 공부해야지.” 보다는
“오후 3시에 책상에 앉는다.” 처럼 시간을 정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처럼 정해진 시간에 행동하는 습관은 전두엽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을 꾸준히 사용하도록 도와줍니다.
반복될수록 새로운 습관이 자리 잡고, 공부나 업무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한의학에서도 기거유상(起居有常),
즉 일정한 생활 리듬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활동하는 시간이 일정할수록 몸뿐 아니라 정신도 안정된다고 보았습니다.
3️⃣ 손을 많이 쓰고, 가볍게 걸으세요.
우리 뇌에서 손과 손가락을 담당하는 영역은 생각보다 넓습니다.
피아노를 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손을 섬세하게 사용하는 활동은 여러 뇌 영역을 함께 자극합니다.
여기에 하루 20~30분 정도의 걷기 같은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더하면 뇌혈류가 증가하고,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해마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한의학에서도 적절한 운동은 기혈순환을 돕고 몸의 정기를 보존하는 중요한 양생법으로 여겼습니다.
몸을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결국 뇌 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는 점은 현대 연구와도 잘 어울리는 부분입니다.
🔹 뇌를 기르는 것은 결국 삶을 기르는 일입니다
뇌는 컴퓨터처럼 한 번 만들어지면 그대로 멈춰 있는 기관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습관을 반복하며,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조금씩 변화합니다.
《황제내경》은 이를 ‘골수의 바다(腦爲髓之海)’라는 말로 표현했고, 현대 뇌과학은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표현은 다르지만 두 관점 모두 매일의 삶이 뇌를 변화시킨다는 공통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한방심리학은 뇌를 몸과 마음에서 분리된 기관으로 보지 않습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몸도 안정되고, 몸이 건강하면 정신도 맑아집니다.
결국 뇌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함께 돌보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거창한 방법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할 일을 메모하는 것, 정해진 시간에 책상 앞에 앉는 것, 잠깐이라도 걷고 손을 움직이는 것. 이런 작은 습관들이 쌓이면 전두엽은 조금씩 단련되고, 우리의 뇌도 조금씩 성장합니다.
치매나 알츠하이머로 힘들어 하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저는 그 분들께 그냥 퇴화의 과정이려니 생각하기 보다 뇌를 활성화하는 방법으로 증상을 좀 더 늦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말씀드립니다.
뇌를 기르는 일은 특별한 비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결국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삶 전체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 참고자료
- Kandel ER. Principles of Neural Science. :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 학습과 기억 형성, 뇌 회로 변화에 관한 대표적인 신경과학 교재
- Eriksson PS et al. Neurogenesis in the adult human hippocampus. Nature Medicine, 1998. : 뇌, 마음, 감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하는 대표적인 뇌과학 저서, 성인의 뇌에서도 새로운 신경세포 생성이 가능하다는 연구
- 《황제내경(黃帝內經)》 : “腦爲髓之海(뇌는 골수의 바다)”라는 개념을 통해 뇌와 골수, 정(精)의 관계를 설명한 한의학 고전.
- 《동의보감(東醫寶鑑)》 : 정(精), 신(神), 양생(養生)의 관점에서 몸과 정신 건강을 다룬 대표적인 한의학 문헌.
- Ratey JJ. Spark: The Revolutionary New Science of Exercise and the Brain. : 운동이 뇌 기능과 기분, 인지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 저서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구체적인 증상이 있다면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개인의 건강 상태에 대한 진단이나 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