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퀄라이저(The Equalizer) 1부: 상실의 슬픔과 불면을 치유하는 법

비타한방(Vita Hanbang) | 시네마 마음처방 영화리뷰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 주연의 영화 이퀄라이저(The Equalizer) 시리즈를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는 이 영화를 1년에 한 번은 꼭 다시 보게 됩니다. 때로는 영화 유튜버들이 올린 요약 영상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도 하죠.

‘믿고 보는 배우’ 덴젤 워싱턴이 선보이는 이퀄라이저는 속편이 거듭 나올 정도로 탄탄한 재미를 보장합니다. 화려하고 속전속결로 전개되는 액션 카타르시스가 저를 이 영화로 자꾸만 이끄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4편이 나오길 기대합니다만, 가능할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저처럼 4편을 학수고대 하시는 분도 많이 계실거라 생각합니다.

※ 스포일러 주의 ※ 
이 글은 영화 더 이퀄라이저 3부작의 핵심 줄거리와 결말을 전제로 한 저의 한방 심리학적 분석 글입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읽으실 때 참고해 주세요.


밤을 잊은 은둔자, 로버트 맥콜의 상처

주인공 로버트 맥콜은 미국 정보부의 전직 비밀요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후, 외적으로는 사망한 상태로 기록된 채 과거를 숨기고 은둔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때 적에게는 무자비한 인물이었을지 모르나,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속에서 그녀의 소원대로 평범하게 숨어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는 낮에는 평범한 홈 디포 스토어의 직원으로 일하지만, 밤이 되면 깊은 상실감과 슬픔 탓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결국 불면증에 시달리던 그는 매일 밤 24시간 오픈하는 카페를 찾아가 밤늦도록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사려상비(思慮傷脾), 신(神)이 안착하지 못하는 불면의 밤

우리는 인생에서 감당하기 힘든 괴로운 일을 만났을 때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합니다. 맥콜의 불면증 역시 아내를 잃은 깊은 상실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 인간은 깊은 심리적 붕괴를 겪게 됩니다.

이를 한방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과도한 사려(思慮, 깊은 생각과 걱정)가 심장과 비장을 상하게 하는 ‘사려상비(思慮傷脾)’ 혹은 ‘심비불화(心脾不和)’의 상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장기들이 상하면, 우리의 정신을 주관하는 신(神)이 안정되게 안착하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게 됩니다. 신이 머무를 곳을 잃었으니, 밤마다 눈이 번쩍 뜨이고 잠들지 못하는 불면의 고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연약한 이웃의 눈물, 잠든 사자의 스위치를 켜다

그러던 어느 날, 맥콜은 늘 가던 카페에서 러시아 마피아의 통제 아래 콜걸로 일하는 어린 소녀 알리나를 만나게 됩니다. 가수가 되기를 꿈꾸는 알리나는 맥콜의 깊은 눈을 보며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손님과 싸웠다는 이유로 마피아 하수인들에게 무참하게 폭행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안 맥콜은 자신이 모은 돈을 들고 하수인들을 찾아가 알리나를 자유롭게 풀어달라고 제안하지만, 그들은 코웃음을 치며 거절합니다.

그 순간, 평온하던 맥콜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깨어납니다. 그는 절대 크게 동요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을 일망타진할 때는 무섭도록 냉정하고 차분합니다. 맥콜은 그 자리에서 5명의 무장 괴한들을 고작 19초 만에 모두 저 세상으로 보냅니다.

여기서 맥콜을 움직이는 것은 사적인 분노가 아니라 ‘의(義)’에 가깝습니다. 옳지 않은 일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음인 것이죠.

한방 심리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그저 기혈(氣血)이 욱하고 치솟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도리를 지키려는 정신적 중심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사람으로 보여집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는 분들 중, ‘아무리 그래도 폭력을 쓰는 게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시는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철저한 약자인 피해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때로는 그 무자비하고 단호한 힘이야말로 유일한 구원의 손길이며, 멈추지 않는 악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현실에는 없는 존재,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구원자

현실에서 과연 남을 위해 이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애쓰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쩌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속 인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맥콜은 절대로 약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며, 사람을 함부로 이용하고 짓밟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용서도 베풀지 않습니다.

그의 구원 여정은 시리즈 전체로 이어집니다.

2편에서는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던 유일한 정보국 동료가 살해당하자 철저하게 사건에 매달리며, 흑인 갱단에 형을 잃고 방황하는 동네 소년 마일스가 곤경에 처했을 때도 직접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 그를 구출합니다.

3편에서는 어느 평범한 노인의 소중한 퇴직금을 온라인 사기로 몽땅 가로챈 시칠리아 범죄 조직을 찾아갑니다.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고 딱 피해를 본 만큼의 돈을 가방에 넣어 나오는 과정에서, 한 소년의 총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치명적인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맥콜의 해결 방식은 언제나 뿌리를 도려내는 전탕(煎湯) 처방과 같습니다.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러시아 마피아의 거두인 푸쉬킨을 단호히 처단하고,

2편에서는 돈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동료를 배신한 무리에게 철저히 죄 값을 치르게 합니다.

3편에서는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마을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괴롭히던 카모라 조직의 수장 빈센트에게, 그들이 유통하던 마약을 스스로 먹게 만들며 비참한 최후를 선사합니다. 그는 악의 뿌리가 다시는 자라나지 못하도록 원인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타인을 치유하며 도달한 심신녕안(心神寧安)의 상태

3편에서 맥콜은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 알타몬테에 머물게 됩니다. 낯선 이방인인 자신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따뜻한 친절을 베푸는 마을 사람들을 보며, 맥콜은 오랫동안 안고 살았던 내면의 상처를 치유받는 듯한 평온함을 느낍니다.

사실 그는 시칠리아에서 어린 소년의 총에 맞았을 때, 스스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마을 경찰 청년의 도움으로 노년의 의사 엔조를 만나 지극정성어린 치료를 받게 됩니다. 정신없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엔조는 그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맥콜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뒤 다시 정신을 잃죠.

후에 기력을 회복한 맥콜이 엔조에게 “어떻게 나를 나쁜 사람으로 신고하지 않고 좋은 사람일 거라 판단했습니까?”라고 묻자, 엔조는 빙그레 웃으며 답합니다.

“자신이 좋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이는, 절대로 나쁜 사람일 리가 없다네.”

저는 맥콜이 이 짧은 대답에서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엄청난 위로를 받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정보국의 비밀 요원으로서 음지에서 행했던 수많은 살상과 무자비한 일들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스스로를 괴롭히던 도덕적 굴레에서 마침내 벗어나게 해주는 면죄부처럼 느꼈을 것입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스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무거운 돌무더기를 짊어지고 절벽을 오르다가, 마침내 그 굴레를 내려놓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맞이하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한방 심리학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갉아먹는 죄책감과 후회는 기를 정체시키고 내면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의사 엔조의 이 한마디는 맥콜의 꽉 막혀 있던 심기(心氣)를 단숨에 뚫어준 최고의 심리 처방전이었던 셈입니다.

내려놓은 시계, 비로소 찾아온 불면의 해방

결국 맥콜의 도움으로 알리나는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낮에 떳떳하게 일하며 가수의 꿈을 키우는 평범한 삶을 되찾습니다.

길을 잃었던 소년 마일스 역시 학생으로서의 일상으로 돌아가, 맥콜을 주인공으로 한 슈퍼히어로 만화를 그리며 미래를 꿈꿉니다.

마피아의 위협에서 벗어난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은 비로소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슬픔과 불면 속에서 방황하던 로버트 맥콜 역시 비로소 마음의 평화를 얻고 깊은 잠에 들게 됩니다.

이 시리즈를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기억하겠지만, 맥콜은 항상 손목에 찬 전자시계의 스톱워치로 시간을 강박적으로 재며 행동했습니다.

한방 심리학적으로 이는 자신의 삶을 완벽히 통제하려는 극심한 긴장과 각성 상태를 뜻합니다.

하지만 3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탈리아 마을 알타몬테의 따뜻한 축제 속에 녹아든 맥콜은 그 시계를 더 이상 바라보지 않고 내려놓은 채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입니다.

시간이라는 굴레와 통제 본능마저 내려놓은 것, 이것이야말로 한방 심리학에서 말하는 최고의 치유 상태인 “심신녕안(心神寧安: 마음과 정신이 편안하게 안정됨)”에 도달했다는 완벽한 증거입니다.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이타적인 행위와 마을 사람들의 조건 없는 환대가, 결국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가장 강력한 처방전이 되었던 셈입니다.

한 고뇌하는 인간이 어떻게 치유를 받게 되는가의 맥락으로 보신다면 영화를 다르게 보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이어서 2부에서는 겉으로는 악날해 보이지만 맥콜의 압도적인 살기 앞에 비겁하게 숨어버리는 악당들의 아이러니한 심리 구조를 한방 담력 이론과 연결하여 분석해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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