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겟 아웃(Get Out) : 비틀린 욕망의 대가, 무엇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는가?

비타한방(Vita Hanbang) | 시네마 마음처방 영화리뷰

2017년도 조던 필(Jordan Peele) 감독의 영화 “겟 아웃(GET OUT) 을 이미 관람하신 분들이 많이 계실거라고 생각합니다. 공포영화라 하면 대개 귀신이나 괴물을 보여주며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데요.

그런데 《겟 아웃》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인종차별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거 같다가 점점 기이한 미로속으로 빠져들어가면서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으로 관객들을 몰고 갑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까지 한순간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바라보게 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공포가 느껴진다고 생각한 장면은 누군가 죽는 장면도, 잔인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크리스가 여자친구 로즈의 집에 처음 가는 길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가는 길에 로즈의 차로 인해 사슴이 로드 킬 당하는 장면이나, 경찰이 운전을 하지 않은 크리스의 운전면허증을 요구하는 장면, 그리고 반갑게 맞이하는 로즈의 가족 이 모든 상황이 좀 불안하고 불편하다고 느꼈습니다.

로즈의 부모는 크리스를 환영합니다.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 모두가 친절합니다. 웃으며 맞이하고, 따뜻하게 식사를 준비하고, 농담도 건넵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친절함 속에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또아리를 틀고 있습니다. 마치 꿈속에서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직감하는 순간처럼 말이죠.

혹은 가위에 눌렸을 때처럼 몸은 멀쩡한데 현실이 어긋나기 시작하는 기분.

저는 그것이 《겟 아웃》이 만들어낸 가장 뛰어난 공포라고 생각합니다. 시각적인 영상으로 인한 공포가 아니라 불안으로 인해 직감을 무섭게 만든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친절함 뒤에 숨겨진 악몽의 실체

조던 필 감독은 영화의 시작부터 답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대신, 일상 속에 작은 위화감을 하나씩 쌓아 올립니다.

집안의 미묘하게 어긋난 분위기, 하인들의 부자연스러운 표정,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말들이 반복될 때 관객은 주인공 크리스와 같은 감정에 자연스럽게 동기화됩니다.

‘도대체 무엇이 이렇게 이상한 걸까?’

이 영화에서의 공포감은 갑자기 우리를 덮치지 않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스며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악몽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을 경험하게 됩니다.

많은 이들이 《겟 아웃》을 보면서 인종차별을 피부적으로 느낍니다. 실제 미국 사회에서 백인과 흑인, 혹은 아시안을 포함한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듯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인종의 문제를 넘어,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영생’을 향한 욕망이 어떻게 광기로 변질되는가입니다.

백인들은 크리스와 같은 흑인의 건강한 신체, 그 피지컬을 오직 자신들의 욕망을 채울 도구로 탐합니다. 크리스의 몸을 두고 경매를 벌이는 그 장면은, 영화가 지금까지 쌓아온 불쾌함을 한순간에 소름 끼치는 공포로 치환하는 충격적인 전개였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은 걸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진시황의 불로초에 대한 갈망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거부하고 영원한 권력을 갖고 싶어하는 사적욕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 미국의 억만장자이자 IT 사업가인 브라이언 존슨(Bryan Johnson)은 신체 나이를 18세로 되돌리겠다는 목표로 이른바 ‘프로젝트 블루프린트 (Project Blueprint)’ 를 진행하며 매년 수십억 원을 투자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2023년 당시 17세였던 자신의 친아들로부터 혈장을 수혈받아 전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노화를 늦추는 연구와 유전자 치료, 장기이식, 인공지능 기술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이미 수십년전부터 무분별한 장기 이식에 관련된 소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방법은 달라졌지만 질문은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없을까?’

《겟 아웃》의 아미티지 가족과 마을 사람들 역시 같은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을 빼앗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 순간 영화는 인종차별을 넘어, 인간 욕망의 가장 어두운 얼굴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정말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일까?

우리는 늘 오래 사는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건강한 삶이 보장된다면 말입니다.

건강을 잃고, 기억을 잃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이 계속 이어진다면, 그것은 과연 행복한 삶일까요?

오랫동안 노년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며 저는 한 가지를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죽음 자체보다 ‘나를 잃어가는 과정’을 더 두려워합니다.

치매가 깊어져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름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몸은 살아 있지만 ‘나’라는 존재는 점점 희미해집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삶은 길이보다 ‘나답게 살아가는 시간’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노년이 되면 건강은 늘 화두입니다. 한의사인 저에게 보약을 매년 드시겠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리고 건강식품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몸을 남에게 신세지기 전에 잘 챙기고 좋은 음식을 먹고 보약을 매년 먹어주는 관리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체질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정력제 섭취나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려 한다면 과유불급입니다.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으면 결국 나를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비틀린 욕망의 대가: 자아를 잃어버린 영생의 허상

로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흑인들의 몸을 빌려 자신들의 불안전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죽음을 피했고, 탄탄한 육체를 얻어 재탄생했죠.

하지만 그들은 정말 행복했을까요?

그들의 삶은 만족이 아닌, 끝없는 갈증의 반복일 뿐이었습니다. 또 다른 몸을 원하고, 또 다른 시간을 갈구하며, 계속해서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야 했습니다. 욕망은 채워질수록 멈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굶주림처럼 더 거대해졌습니다.

영화의 결말에서 크리스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 과정에서 할머니의 기억을 가진 흑인 여성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크리스를 공격하다 허망하게 생을 마감합니다.

할아버지를 담고 있는 흑인 남성 역시 스마트폰 플래시라는 짧은 자극으로 기억이 잠시 돌아오지만, 곧바로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자신이 다시는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LOTUS의 마음처방

《겟 아웃》을 보고 난 후, 뒤틀린 욕망에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정말 저렇게 까지 해가며 살고 싶을까?”

크리스의 신체를 노렸던 눈먼 노인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크리스의 젊은 육체를 빌려 다시 세상을 보고 싶어 했지만, 그 이면에는 오직 자신만을 향한 맹목적인 탐욕뿐이었습니다.

우리도 한번 쯤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의학에서는 오래 사는 것보다 “양생(養生)” 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양생은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기술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조화를 이루며 삶의 질을 높이는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잘 이해하고 다룰 줄 압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겟 아웃》의 사람들은 삶을 가꾸지 않고, 시간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그들이 잃은 것은 젊음이 아니라 ‘인간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진짜 악마는 괴물이 아닙니다.

‘끝없는 욕망이 인간의 존엄을 삼켜버리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겟 아웃》이 우리에게 보여준 가장 깊고 잔인한 공포였습니다.

“당신은 지금, 온전히 당신답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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