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인가, 빙의인가 – 영화 《레퀴엠》 믿음의 이름으로 길을 잃다

비타한방(Vita Hanbang) | 시네마 마음처방 영화리뷰

※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전에 어린소녀가 주연한 린다 블레어 (Linda Blair)의 <엑소시스트>를 보신적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 감독이 연출하고, 윌리엄 피터 블래티(William Peter Blatty)가 동명의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쓴 <엑소시스트>는 공포영화 역사에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악령에 사로잡힌 어린 소녀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신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극장에서 상영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영화 《레퀴엠(Requiem, 2006)》을 시청하였습니다. 이전에 본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처럼 긴장감이 넘치지도 않고, 《엑소시스트》처럼 자극적인 공포를 보여주지않습니다. 솔직히 영화적인 재미만 놓고 보면 조금 심심했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매우 담담하게 한 젊은 여성이 가족과 종교, 질병 사이에서 점점 무너져가는 과정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 이상하게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아마 이 영화가 단순히 ‘악마에게 빙의된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 사건에서 시작된 이야기

《레퀴엠》은 1976년 독일 바이에른주 클링엔베르크에서 일어난 아넬리제 미셸(Anneliese Michel)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입니다. 헐리우드 영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와 같은 스토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영화는 같은 실제 사건에서 출발했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상당히 다릅니다.

아넬리제 미셸은 어린 시절부터 발작을 경험했고 뇌전증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증상이 계속되면서 가족과 일부 가톨릭 성직자들은 그녀의 상태를 악마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여러 차례의 구마의식을 받게 되었고, 1976년 23세의 나이로 심각한 영양실조와 탈수 상태에서 사망했습니다. 이후 부모와 두 명의 사제는 과실치사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당시 독일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레퀴엠》은 이 사건을 그대로 옮겨놓은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미카엘라 클링러라는 이름의 가상의 인물이고, 실제 아넬리제 미셸의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았지만 인물과 행동은 영화적으로 새롭게 구성되었습니다.

감독 한스 크리스티안 슈미트 역시 아넬리제 미셸 사건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영감이었다고 밝히면서도, 실제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실화의 재현이라기보다 ‘질병을 바라보는 인간의 믿음과 해석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미카엘라는 정말 악마가 들린 것일까요?

어쩌면 저는 그보다 다른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 해석했던 것일까요?

그 해석은 한 사람의 삶을 어디까지 바꿀 수 있을까요?

미카엘라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미카엘라에게 처음부터 악마가 등장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녀에게는 실제로 발작 증상이 있었고, 뇌전증 진단을 받고 치료도 받았습니다.

당시인 1970년대에는 이미 뇌파검사인 EEG가 뇌전증 진단에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과는 달랐습니다.

오늘날에는 MRI나 장기간 비디오 EEG 같은 검사를 통해 뇌의 구조와 발작의 양상을 보다 정밀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진단기술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1970년대의 의학이 뇌전증을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뇌전증은 지금도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되는 질환이 아닙니다.

뇌종양이나 뇌혈관질환, 외상, 감염, 유전적인 요인 등 원인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검사를 해도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치료 역시 당시부터 발작을 억제하기 위한 약물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페니토인(phenytoin), 페노바르비탈(phenobarbital), 카바마제핀(carbamazepine) 등의 항경련제가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 약물들은 기본적으로 뇌 신경세포의 과도한 흥분을 억제하여 발작의 발생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즉, 당시에도 발작을 질병의 증상으로 보고 치료하려는 의학적 접근이 존재했습니다.


발작은 왜 악마와 연결되었을까요?

뇌전증 발작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갑작스러운 전신 발작을 처음 본다면 상당히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이해될 수 없는 질병이기도 합니다.

갑자기 쓰러지고, 몸이 굳어지고, 팔다리가 심하게 떨리고, 의식을 잃고, 입에 침이나 거품이 생기기도 합니다.

발작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정신이 혼란스럽거나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학에 대한 지식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대의 사람이라면 이런 모습을 보고 “아.. 이것은 악마에 들린 현상이다” 라고 쉽게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간질이나 발작을 악령이나 악마의 영향으로 해석했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레퀴엠》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증상 자체보다 그 증상에 어떤 의미를 붙이느냐에 있습니다.


병이었던 증상이 어느 순간 ‘악마의 증거’가 되는 아이러니

미카엘라의 발작은 처음에는 질병의 증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종교적인 해석이 강해지면서 조금씩 의미가 달라지게 됩니다.

미카엘라는 대학에 합격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하고 친구를 사귀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뇌전증 때문에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새로운 환경에서도 쉽게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런 미카엘라에게 다가온 친구가 한나였습니다.

한나는 미카엘라가 발작을 일으키자 의사의 진료를 제대로 받아보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미카엘라는 점점 자신의 문제가 단순한 신경학적 질환이 아니라 악마가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성물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모습이나 종교적인 물건에 대한 두려움 역시 영화에서는 빙의의 증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카엘라가 정말 악마 때문에 성물을 두려워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나는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다”는 믿음이 그녀의 두려움을 더욱 크게 만든 것은 아닐까요?

영화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그냥 경험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현상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나는 병이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과

“내 안에 악마가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은 같은 증상을 경험하더라도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어머니의 믿음은 미카엘라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저는 이 영화에서 미카엘라의 어머니의 믿음이 그녀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미카엘라가 믿음안에서 잘 보호 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젊은 청년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카엘라의 어머니는 딸의 변하는 모습을 못마땅해 합니다. 이런 부분이 미카엘라와의 불화를 더 일으키게 되었고, 결국 심한 발작을 하게 됩니다.

이때 가족과 신부들은 미카엘라의 증상을 점점 질병보다 영적인 문제로 악마에 빙의되었다고 확정짓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어 왔기 때문에 미카엘라에게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로 바뀌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카엘라 역시 어머니의 종교적 해석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나가 그녀에게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며 떠나자고 말하지만 미카엘라는 결국 구마의식을 선택하게 됩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세계 자체가 이미 너무 단단하게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카엘라의 죽음과 결국 법정에 서게 된 사람들

실제 아넬리제 미셸 사건에서는 결국 부모와 두 명의 가톨릭 사제가 법정에 섰습니다.

1976년 미셸이 사망할 당시 그녀는 심각한 영양실조와 탈수 상태였고, 법정에서는 의료진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다는 점이 중요한 쟁점이 되었습니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의 주된 내용입니다.

1978년 독일 법원은 부모와 두 사제에게 과실치사 책임을 인정했고, 모두 6개월의 집행유예형과 보호관찰을 받았습니다. 당시 재판은 종교적 믿음 그 자체를 처벌한 것이 아니라, 그 믿음 속에서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구마의식에 대한 판단은 영화를 통해서도 실제에서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카톨릭에서 구마의식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을 하는 신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를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믿음은 무엇을 보고 믿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스스로에게 던져 봐야 했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이라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이해하는 것에 더 집중하였다면 아마도 스토리가 달라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는 질병을 자신의 죄로 인한 결과로 보는 시선도 적지 않았습니다.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절대자로 부터 온다는 신념이 토속신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하나님의 사랑를 이야기하기 보다 악마의 빙의를 더 무서워하게 됩니다. 악마의 빙의만을 판단하다 보니 현실적인 책임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뇌전증을 바라보는 현대의학과 한의학

오늘날 우리가 간질이라고 부르는 질환은 의학적으로 “뇌전증(epilepsy)”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뇌전증은 뇌의 신경세포에서 비정상적인 전기적 활동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발작이 나타나는 만성적인 신경계 질환입니다.

원인은 다양합니다. 뇌혈관질환이나 뇌손상, 뇌종양, 감염, 유전적 요인 등이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여러 검사를 시행해도 명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의학에서는 EEG, MRI 등의 검사를 통해 발작의 양상과 뇌의 상태를 확인하고, 항경련제를 사용하여 발작이 발생하는 것을 억제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항경련제가 발작을 조절하는 치료라는 점입니다.

발작을 억제한다고 해서 반드시 뇌전증의 원인이 완전히 제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약물치료만으로도 많은 환자에서 발작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치료가 어려운 경우에는 수술이나 신경자극술, 식이요법 등의 치료를 고려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의학에서는 간질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한의학에서는 뇌전증과 유사한 발작 증상을 오래전부터 전간(癲癇) 등의 범주에서 다루어 왔습니다.

《황제내경》을 비롯한 고전 의서에서는 갑작스러운 의식 변화와 경련, 쓰러짐 등의 증상을 단순히 하나의 원인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후대의 의가들은 특히 담(痰), 풍(風), 화(火), 경(驚) 등의 병리와 장부의 기능 이상 등을 서로 연결하여 전간의 발생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현대의학과 한의학의 차이가 흥미롭습니다.

현대의학은 발작을 뇌의 비정상적인 전기적 활동이라는 생리학적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눈앞에 나타난 경련이라는 현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체질과 몸의 상태, 담음과 기혈의 변화, 정서적인 요인 등을 함께 살펴 전체적인 병리 과정 속에서 증상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을 현대의학의 뇌전증과 한의학의 전간이 완전히 같은 개념이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시대도 다르고 질병을 분류하는 방식과 설명체계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은 있습니다.

두 의학 모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질병의 관점에서 설명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레퀴엠》의 이야기가 다시 돌아옵니다.

증상은 하나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해석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때로 한 사람의 삶을 바꿔버릴 만큼 강력합니다.

《레퀴엠》이 남긴 질문

솔직히 영화 자체는 재미있지 않았습니다.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처럼 자극적이지도 않았고, 《엑소시스트》처럼 무섭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가 끝난 뒤에는 오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질병을 악마라고 부르는 순간 우리는 그 사람에게 필요한 치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모든 영적인 경험을 단순히 질병이라고 단정하는 것 역시 인간의 경험을 너무 좁게 바라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믿음과 의학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무엇인지 구별하려는 겸손함과 분별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부모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자녀 역시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사람을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가야지, 두려움과 통제 속에 가두어서는 안 됩니다.

《레퀴엠》을 보고 난 뒤 제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믿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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