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소년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소년의 시간》이 보여준 SNS와 마음의 붕괴

비타한방(Vita Hanbang) | 시네마 마음처방 영화리뷰

이 글은 <소년의 시간>이 남긴 질문들을 함께 고민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작품의 중요한 스토리가 담겨 있으니, 아직 드라마를 보지 않으셨다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소년의 시간 (Adolescence) 주요 정보
원제: Adolescence
공개: 2025년 3월 13일 (넷플릭스)
제작진: 잭 손, 스티븐 그레이엄(기획 및 각본) / 필립 배런티니(연출)
장르: 범죄 드라마
회차: 4부작
주연: 스티븐 그레이엄(에디 밀러 역), 오언 쿠퍼(제이미 밀러 역)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Adolescence)》 을 보고 나면 쉽게 마음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Adolescence” 는 우리말로 청소년기, 사춘기를 뜻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단순히 나이대를 의미하는 것을 넘어, 한 소년이 성인이 되기 전 겪게 혼란, 온라인 환경의 영향 그리고 비극적인 사건이 그 발달 과정에 어떤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된 것 같습니다.

드라마의 시작은 13세 소년 제이미가 같은 학교 여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새벽에 집에서 체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이 장면은 제이미와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이 드라마가 섬뜩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살인사건 자체보다 순진한 아이의 얼굴이 전혀 괴물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편집되지 않은 카메라, 편집되지 않은 현실

《소년의 시간》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한 번의 촬영이 길게 이어지는 원테이크 방식입니다.

카메라는 제이미가 체포되는 순간부터 경찰서와 학교, 가족의 공간까지 계속 따라갑니다. 장면을 빠르게 편집해 감정을 정리해 주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시청자는 사건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질문하게 됩니다.

“이 아이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분노보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수치심’이다

제이미의 문제는 단순히 분노 조절을 못해서 저지른 행위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거절당했을 때 느끼는 수치심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욕구에 대한 반발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청소년기는 자아가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매력적인 사람인지, 나는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해 민감해지는 시기인 것입니다. 성인들이 생각하기에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이토록 복잡하고 다양한 매체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라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거절도 때로는 단순한 거절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거절했다.” 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때 마음은 상처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를 만들어냅니다.

“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잘못한 것이다.”

“약한 사람이 되면 안 된다.”

“강한 사람이 되어야 인정받는다.”

이런 생각이 반복되면 상처는 점점 분노로 변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잘못된 답을 가르치는 온라인 세계

이 과정에서 드라마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온라인 문화입니다.

특히 일부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타나는 인셀(Incel) 문화와 왜곡된 남성성입니다. 사실 이 단어를 저는 처음 접해 봅니다.

검색해 보니 인셀은 원래 연애나 성적 관계를 맺기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의 외로움과 좌절을 공유하는 온라인 문화에서 출발했지만, 일부 공간에서는 여성에 대한 적대감이나 남성의 서열을 강조하는 극단적인 세계관으로 변질되기도 한 단어라고 합니다.

문제는 아직 자신의 가치관이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에게 이런 생각이 반복적으로 노출되었고, 오히려 특정 대상을 비하하는 의미로 지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온라인에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생각을 계속 확인받게 됩니다.

“역시 세상은 그렇다.”

“역시 약한 사람은 무시당한다.”

“역시 강해야 인정받는다.”

어느 순간 그것은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되어버립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것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대신, 상처를 정당화해주는 세계관을 만나는 것.


한의학에서 설명하는 감정의 부조화

한의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칠정(七情)”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인간의 삶에서 기쁨, 분노, 슬픔, 생각, 근심, 두려움, 놀람과 같은 감정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감정 자체가 아니라, 감정이 지나치게 오래 머물거나 생각과 뒤엉켜 마음의 균형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소년의 시간》에서 제이미의 문제를 단순히 ‘분노’라고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거절에 대한 상처와 수치심,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 밑에 있는 불안과 두려움이 서로 얽혀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의 분노만 억누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화가 났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때 네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니?”라고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음의 문제를 바라볼 때 감정의 겉모습보다 그 아래에 있는 마음을 살펴야 하는 이유입니다.


무너진 것은 제이미의 마음만이 아니었다

이 드라마의 가장 아픈 지점은 제이미의 범죄 그 자체보다, 그 범죄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가족의 삶이 더욱 그렇습니다.

아버지 에디 밀러는 아들의 살인 혐의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마을 전체가 그들을 범죄자의 가족으로 낙인찍고, 일하는 차에 ‘강간범’이라는 낙서가 새겨지는 순간, 가족의 사생활은 증발해 버리고 말죠. 인터넷에 박제된 그들의 사진은 전 세계에 공유되며 ‘사형 선고’와 다름없는 비난을 쏟아냅니다.

제이미가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유죄를 인정하겠다고 말할 때, 아들을 지키고 싶었던 부모가 느끼는 죄책감과 절망은 시청자마저 숨 쉬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들은 자식을 방치했다는 무거운 자책감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용기를 내보지만, 이미 무너져 내린 가정의 파편을 수습하기엔 세상의 시선이 너무나 차가운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나눌 관계’

그렇다면 현재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거나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으로는 해결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이미 빠르게 발전하는 인터넷과 SNS 영상안에서 우리의 아이들을 온전히 지켜낼 방법은 없는 듯합니다.

지금 현실의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현실의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라고 다그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니?”

“그때 기분이 어땠니?”

“혹시 많이 창피했니?”

“누군가에게 무시당했다고 느꼈니?”

라고 물어볼 수 있는 어른 말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법을 아직 배우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아이는 슬픔을 울음으로 표현하지만,

어떤 아이는 침묵으로,

또 어떤 아이는 분노와 공격성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행동만 바라보면 마음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을 알고 있을까

《소년의 시간》은 한 소년의 범죄를 보여주지만, 결국 우리에게 더 불편한 질문을 남깁니다.

아이의 마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 알아차릴 수 있을까?

청소년기는 아직 자아도, 가치관도, 감정을 다루는 방법도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 반복해서 듣는 말과 맺는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특히 온라인에서 자신이 가진 상처를 이해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잘못된 생각까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어른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괴물이 된 한 명의 소년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마음을 닫고 잘못된 세계관 속으로 들어가는 동안, 아무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언제나 정답을 알려주는 어른이 아닐 것입니다.

때로는 아이가 무너지기 전에 말을 걸어주고,

그 마음을 들어주고,

자신의 상처를 다른 사람을 향한 증오로 바꾸지 않도록 도와주는 어른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소년의 시간》이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무거운 질문은 결국 이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아이의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을 얼마나 늦게 알아차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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