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한방(Vita Hanbang) | 한방심리 칼럼

오백원의 기억
초등학교 때, 나는 처음으로 거짓말이 사람 사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같은 반 친구에게 오백원을 빌려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토요일에 학교에 오면 갚겠다고 했다. 나는 그 약속을 믿고 토요일 아침 학교에 갔지만, 친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뒤에도 미안하다는 말이나 오지 못했던 변명을 들은 기억은 없다. 아마도 나를 피해다녔던 것 같다. 나는 그 문제를 가지고 따지거나 할 마음도 없었고 그냥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아마 돈을 갚을 형편이 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 말고도 비슷한 일을 당한 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고, 결국 나는 그 오백원을 그냥 포기했으며, 그 친구와도 더 이상 가까이 지내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작은 사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일을 오래 기억하고 있다.
오백원 동전도 나오기 전 시절이었으니 어린 나에게는 적은 금액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도 그 돈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사람은 때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을 피하는 것을 더 쉽게 선택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할까?
단순히 ‘나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거짓말의 종류는 너무 다양하다.
혼나지 않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 있고, 자신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도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 사실을 조금 감추는 ‘선의의 거짓말(white lie)’도 있다.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을 속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서로 다른 거짓말들 뒤에는 어떤 마음이 숨어 있을까?
거짓말은 왜 하는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리는 선택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된다. 100퍼센트 진실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배려없고 제멋대로인 사람으로 찍힐 가능성이 많다.
왜 우리는 때때로 거짓말을 할까?
심리학적으로 거짓말은 단순한 언어적 행동이라기보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조절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현실이 불편할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어떻게든 바꾸고 싶어 한다.
혼날 것 같으면 혼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 것 같으면 그것을 감추려 한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것 같으면 진실을 조금 돌려 말하기도 한다.
결국 거짓말의 밑바닥에는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두려움일 수도 있고, 수치심일 수도 있으며, 욕심이나 자존심일 수도 있다.
첫 번째 이유, 처벌을 피하기 위해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거짓말은 처벌이나 불이익을 피하기 위한 거짓말이다.
어린아이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
“누가 그랬어?”
“제가 안 했어요.”
잘못을 인정하면 혼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때 거짓말의 목적은 상대를 속이는 것 자체가 아니다.
‘혼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 목적이다.
어린아이의 거짓말이 성장하면서 점점 복잡해지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배우고, 그 결과를 피하기 위해 더 정교한 방식으로 사실을 감추기도 한다.
범죄 상황에서는 이러한 거짓말이 훨씬 심각한 형태로 나타난다. 자신의 범죄 사실이나 책임을 숨기기 위해 알리바이를 꾸미거나, 사실과 다른 진술을 하거나, 불리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사용한다.
그래서 수사에서는 말의 내용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는 모순과 객관적인 사실의 불일치를 살핀다.
“그때 어디에 있었습니까?”
“누구와 함께 있었습니까?”
“그렇다면 왜 이 기록과 맞지 않습니까?”
하나의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해지고, 그 설명이 다시 다른 사실과 부딪히면서 모순이 생긴다.
어쩌면 이것이 거짓말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진실을 피하기 위해 만든 거짓말이 오히려 진실로 들어가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어린아이의 “제가 안 했어요”라는 말에서 시작된 처벌 회피의 심리는, 때로는 성인이 된 후 훨씬 복잡하고 치밀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거짓말의 형태는 달라져도 그 밑바닥에 있는 마음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나는 이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 자존심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사람은 처벌만 두려워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도 두려워한다.
돈이 없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실패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핑계를 댈 수도 있다.
때로는 실제 능력보다 자신을 더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때 거짓말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나’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자존심이 강할수록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다.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부족한 사람” 이라는 느낌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보통 일반인들이 하는 거짓말 중에 모두 악의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white lie, 즉 선의의 거짓말도 있다.
친구가 새 옷을 입고 와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잘 어울린다”고 말할 수 있다.
상대방의 생일을 위해 깜짝 선물을 준비해 놓고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거짓말은 상대를 해치기보다 오히려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다면 거짓말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진실을 말하는 것이 언제나 옳은 것일까?
그리고 반대로 상대를 배려한다는 이유로 사실을 감추는 것이 언제나 괜찮은 것일까?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친구를 숨겨줄 것인가? 숨겨주고 거짓을 말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게 선의이고 어떤것이 악의일까?
거짓말은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네 번째 이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때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다.
돈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자신의 경력이나 능력을 과장하거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기도 한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도록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있다.
이때 거짓말은 자기방어를 넘어 욕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된다.
문제는 원하는 것이 클수록 거짓말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은 거짓말 시작되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 거짓말을 들키지 않으려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하고, 새롭게 만들어낸 이야기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거짓말을 해야 한다.
이런 모습과 관련해 대중적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리플리 증후군’이다.
다만 리플리 증후군은 정신의학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된 진단명은 아니다.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거짓말로 자신을 과장하거나 다른 사람처럼 꾸미고, 그 허구를 유지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거짓말하는 모습을 설명할 때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남을 속인다는 데 있지 않다.
처음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만든 거짓말이, 나중에는 그 원하는 삶 자체를 만들어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 없는 사람이 돈이 많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경력과 배경을 가진 사람처럼 자신을 꾸민다.
그리고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낸다.
결국 거짓말은 현실과 욕망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도구가 된다.
하지만 그 간격을 거짓말로 메울수록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이런 질문까지 하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속였던 것일까, 아니면 결국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된 것일까.
욕망은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거짓말은 다시 욕망을 현실처럼 보이게 만든다.
어쩌면 거짓말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이, 어느 순간 내가 살아가는 현실 자체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도 거짓말을 할까
더 흥미로운 것은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는 능력도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객관적으로 내 과실이 100%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사고를 설명하면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이유를 찾아내려는 경향이 있다.
“앞차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어.”
“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어.”
“상대방도 조금은 부주의했을 거야.”
물론 이런 말이 언제나 거짓말이라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객관적인 사실보다 자신에게 덜 불리한 방식으로 사건을 해석하려는 마음이 작동하기도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향을 ‘자기고양적 편향(self-serving bias)’과 연결해서 설명한다.
사람은 자신의 성공은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실패나 잘못은 외부의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행동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반드시 의식적인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도 정말 그렇게 믿는다.
자신의 잘못을 온전히 인정하는 순간 자존심이 상하거나 죄책감, 수치심과 같은 불편한 감정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현실을 조금 다르게 해석한다.
‘내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어쩔 수 없었어.’
‘내 책임도 있지만 상대방에게도 문제가 있었어.’
‘내가 그렇게 행동한 데는 이유가 있었어.’
이런 생각들은 때로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게 해주는 심리적 완충장치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해석이 지나치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같은 행동을 반복할 수도 있다.
그래서 거짓말은 반드시 입 밖으로 나오는 말만을 의미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속 해석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어쩌면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진실은 다른 사람이 말해주는 진실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인정해야 하는 진실인지도 모른다.
한방심리에서 바라보는 거짓말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마음과 몸을 따로 떼어놓고 바라보지 않는다.
칠정(七情), 즉 희·노·우·사·비·공·경과 같은 감정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지만, 지나치거나 오래 지속되면 몸의 균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거짓말 역시 말 한마디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과 욕구, 두려움이 행동으로 표현되는 과정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두려움 때문에 숨길 수도 있고, 수치심 때문에 감출 수도 있으며, 욕심 때문에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한방심리의 관점에서 거짓말을 바라본다면 ‘거짓말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무엇을 지키고 싶어 하는가?”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가?”
라는 질문까지 가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거짓말이 우리를 지배하기 전에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불편한 진실이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패가 있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약점이 있으며, 때로는 스스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욕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기 전에, 어쩌면 먼저 자기 자신과 타협한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내가 잘못한 건 아니야.’
‘어쩔 수 없었어.’
그렇게 현실과 조금씩 거리를 두다 보면 어느 순간 거짓말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말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이 된다.
물론 거짓말이라는 하나의 단어만으로 사람의 행동을 몇 가지 유형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거짓말의 동기와 상황, 목적에 따라 다양한 관점에서 이를 설명한다.
어떤 거짓말은 두려움에서 시작되고, 어떤 거짓말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도 있고,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도 있다.
문제는 작은 거짓말 하나가 어디까지 자라나는가에 있다.
작은 불씨 하나가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키워지면 나중에는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불길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체면을 지키기 위한 작은 거짓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거짓말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조차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서 흐려질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점점 더 그 경계를 알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SNS에는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는 삶이 넘쳐나지만,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실제 삶을 얼마나 보여주는지는 알 수 없다. 이제는 얼굴과 목소리조차 기술을 이용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을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기도 점점 어려워진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가까운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연인이 관계가 끝나려는 순간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폭력으로 내몰았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어렵지 않게 접한다.
그 사람이 처음부터 그런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관계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거짓된 모습은 진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진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거짓말이 누군가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반복하며, 결국 다른 사람의 삶까지 무너뜨리는 거짓말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것은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가 아니다.
타인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선택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을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만 판단하기보다 그 거짓말이 무엇에서 시작되었고,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가끔은 다른 사람의 거짓말을 들여다보기 전에 자신에게도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무엇을 인정하기 싫어하는가.
혹시 나 자신에게조차 괜찮다고 말하면서 외면하고 있는 진실은 없는가.
어쩌면 거짓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얼마나 잘 속이느냐가 아니라, 내가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하기 시작했는가인지도 모른다.
오백원짜리 작은 약속에서 시작된 오래된 기억은 결국 이런 질문으로 돌아온다.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할까.
그리고 그보다 더 어려운 질문이 하나 남는다.
나는 나 자신에게 얼마나 솔직한 사람일까.